Min
열평형 상태에서는 열의 이동이 없는가? 본문
제목에 적은 쟁점은 내가 근무중인 학원에서 잠시 이슈가 되었던,
인근 모 중학교의 시험 문제에서 비롯된다.
중2 과학 8단원에서 열평형 개념이 처음 등장한다.
온도가 다른 두 물체 사이에서는 열(=에너지)이 이동하며,
열역학 2법칙에 의하여 열은 항상 온도가 높은 물체에서 낮은 물체로 이동한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모든 물체는 온도가 동일해지며, 이 경우를 열평형 상태라 한다.
교과서에서는 위와 같이 적으며, 열평형 상태가 되기 전의 열의 이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만,
열평형 이후 열의 이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열평형 상태가 되는 과정에서는 시간에 따라 이동하는 열의 양은 점점 감소한다고는 언급한다)
열평형 이후 열의 이동에 대한 해석이 학교 선생님들마다 달라서,
(비록 교과서에서 지향하는 교육 목표와는 거리가 있을 지라도)종종 시험 문제에서는
열평형 상태일 때 열의 이동을 묻는 지문들이 등장하고는 한다.
재미있는 점은 학교 선생님들마다 해석이 다르다는 점이다.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관점을 정리해볼 수 있겠다.
1. 열평형 상태에서도 열의 이동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물체 A와 B가 열평형 상태가 되더라도 둘 사이의 상호작용은 여전히 존재한다.
마치 화학에서의 동적평형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녹지 않고 가라 앉아 있는 설탕입자는 사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용해와 석출이 끊임 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평형 상태가 되더라도 물질을 이루고 있는 모든 입자들의 운동에너지가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으며,
필연적으로 상호작용이 존재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으므로 열의 이동이 완전히 없다고 부를 수는 없다.
'알짜열'의 이동이 없다, 혹은 주고 받는 열의 양이 같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2. 열평형 상태에서는 열의 이동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알짜힘이 0인 경우와도 같은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물체에 존재하는 여러 힘의 합력이 0이 될 경우, 힘의 평형 상태라고 설명한다.
물리적 관점에서는 ①여러 힘이 존재했는데 더해서 0이 되는 경우와 ②정말로 아무런 힘이 존재 하지 않는 경우를 구별하지 않는다.(사실 ②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열평형 상태도 마찬가지로 관점에 따라 주고 받는 열의 양이 같다고도 볼 수 있지만,
위와 같은 논리로 이 상태를 열의 이동이 없다고 설명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더 올바른 설명이다.
동적 평형과는 상황이 조금 다른데,
설탕의 용해평형을 예를 들면 녹아 있는 설탕 분자와 아직 덩어리로 있는 설탕 분자는 엄연히 입자들의 밀집도에 차이가 있다. 이 차이가 결국 끊임 없는 용해↔석출 과정이 반복되도록 하는 '근원'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온도'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분자 운동의 정도가 근원으로, 이상적인 열평형 상태에서는 분자 운동이 완전히 동일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따라서 화학적인 동적 평형의 개념과는 상황이 다르다.
어느 쪽이 더 타당한지 고민을 해보았는데.....
사실 물리 전공 선생님과 화학 전공 선생님의 의견이 갈리는 것 같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화학에서 설명하는 화학반응에서의 가역 반응, 비가역 반응의 관점과
물리학에서 설명하는 열역학 제2법칙에 의거한 가역 과정, 비가역 과정의 관점이 다른 것이다.
모든 화학 반응은 가역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비가역 반응은 역반응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매우 드물기 때문에 비가역 반응으로 취급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화학 반응의 관점에서는 모든 반응은 끊임없이 정반응과 역반응이 일어나고 있으며, 동적 평형 상태에서는 두 반응의 정도가 같다고 보는 것이 익숙한 관점이 된다.
그러나 물리학에서 설명하는 비가역 과정은 화학 반응의 관점이 아닌, 에너지의 방향성에 해당되는 엔트로피에 대한 설명이다. 농도 차에 따라 스스로 퍼져나간 향수 분자는 다시 되돌아와 모일 수 없다. 공기 저항이 있는 환경에서 진동하는 진자 또한 열에너지로 끊임없이 역학적에너지를 잃어버리며 멈추게 된다. 에너지는 보존되지만, 공기 중의 열에너지를 흡수하여 다시 진자가 진동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에너지 흐름의 방향성 측면에서 물리학에서는 대부분의 자연 현상은 비가역 과정이라 설명한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만나 열평형 상태가 되는 과정 또한 비가역 과정이다. 따라서 열평형이 된 후에는 더 이상 열을 주고 받지 않은 상태라고 보는 것이 더 물리적으로 올바른 해석이 되겠다.
'Daily > Majo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기율표에서 금속-비금속의 경계가 대각선인 이유는? (0) | 2024.02.11 |
---|---|
2022 개정교육과정(물리학Ⅰ) 변화 (0) | 2024.01.20 |
혈액 관찰 (1) | 2022.01.12 |
교과서 속 틀린 과학 개념(학생들이 가지는 대표적인 과학 오개념 모음) (1) | 2021.09.08 |
[일천물] - 3. 양자역학 - c(수정) (3) | 2021.01.31 |